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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의 기원] 인류 문명의 기원을 찾아서 ⑥ 메소 아메리카 문명 (3) '마야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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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12회 작성일 23-11-27 09:26

            본문

            마야 문명, 그 비밀을 찾아서

            옛날 옛적, 중앙 아메리카를 지배했던 마야 문명은 결국 사라졌지만, 오늘날 그 후손들은 여전히 그들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증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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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카탄 반도, 사진: broaderhorizons]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1830년대와 1840년대, 영국과 미국 출신의 탐험가들이 유카탄 반도를 탐험하면서, 스페인 수도원 아래나 거리 아래에서 잊혀진 문명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의 유적은 정글에 의해 다시 자연에 흡수되어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신비로운 장소들이 중요한 고고학적 보물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답니다.


            이 버려진 장소와 유물들, 즉 사원, 피라미드, 예술 작품의 잔해들은 그 당시에는 그 기능이나 의미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1841년에 존 로이드 스티븐스는 이 모든 것이 같은 사람들의 손길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는 “이들이 누구였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또는 그들의 조상이 누구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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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야문명의 국가들, 사진: 위키백과] 


            이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폐허들은 한때 중앙 아메리카 대부분을 차지했던 위대한 메소아메리카 문명, 마야의 잔해였습니다. 북부 벨리즈부터 과테말라, 멕시코 남부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이 지역의 첫 작물을 재배하고, 야생동물을 길들이고, 첫 도시를 건설했으며, 현대 문명의 거의 모든 측면을 창조하거나 발전시켰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이 몇몇 전통과 이야기를 지켜오고 있지만, 마야 문명에 대해 여전히 많은 것이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몇 세기 전 그들의 비밀이 아직도 숨겨져 있던 시절처럼 말이죠.


            마야 문명의 기원


            마야 문명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7000년 B.C.에서 2000년 B.C. 사이에 처음 등장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때 당시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유목 생활을 버리고 좀 더 영구적인 정착지를 만들었습니다. 최근 분석에 따르면, 최초의 정착민들은 남아메리카에서 왔으며, 4000년 B.C.경에는 이미 그들의 주요 식량인 옥수수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옥수수 재배는 마야 문명의 발전에 큰 변화를 가져왔죠, 사회와 문화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했으니까요.


            이 새로운 이주민들은 단순히 옥수수만 심은 게 아니에요. 그들은 또한 닉스타말리제이션, 즉 건조된 옥수수를 불에 삶은 다음 알칼리 용액에 담가 인간이 소화하기 쉽게 만드는 과정을 배웠습니다. 마야인들은 이후로도 호박, 카사바, 콩과 같은 중요한 채소들을 재배하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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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치아파스의 마야 고고학 유적지인 보남팍의 벽화 사원 벽을 덮고 있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벽화 중 하나를 재현한 것입니다. 건물의 방 3개에 걸쳐 있는 벽화에는 고대 제국의 전쟁과 축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출처: National Geograpgic]


            마야인들은 옆에 있던 올멕 문명과 함께 발전하며 아이디어를 교환했습니다. 올멕 문명은 고대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때 마야인들이 유명해질 의식적 복합체를 받아들였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올멕처럼 마야인들도 곧 그들의 의식 지역 주변에 도시를 건설하는 데 집중했죠. 이러한 농업과 도시 개발의 발전은 지금 마야의 전고전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기간은 1500년에서 200년 B.C. 사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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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니치 자나브 파칼 1세, 사진: commons] 


            키니치 자나브 파칼 1세, 일명 위대한 파칼은 전콜럼비아 메소아메리카의 후기 고전기에 팔렝케 마야 도시 국가를 지배한 지도자였습니다. 615년에 왕위에 오른 그는 68년(인류 역사상 다섯 번째로 긴 재위 기간)간 통치하며, 아메리카 역사에서 가장 오래 통치한 군주입니다. 이 기간 동안 파칼은 팔렝케의 중요한 건축물과 글자들을 건설하거나 확장했습니다. 그는 그의 관 뚜껑에 새겨진 묘사로 가장 유명하며, 고고학적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wikipedia.org


            마야인들이 그들의 사회를 더욱 발전시키면서, 복잡한 무역망, 발전된 관개 시스템, 수처리 및 농업 기술, 전쟁, 스포츠, 글쓰기, 복잡한 달력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이 복잡한 달력에는 세 가지 날짜 체계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신들을 위한 것, 또 하나는 민간 생활을 위한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장기간 달력으로 알려진 천문학 달력이었다고 합니다. 이 세 번째 달력의 시작점은 인간 창조의 전설적인 날짜인 기원전 3114년 8월 11일로 설정되었습니다. 장기간 달력은 2012년 12월 21일에 새로운 주기를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그 날짜에 세상이 끝날 것이라는 신화가 생겼습니다요. 하지만 도시 전설과 마야 전설의 잘못된 해석에도 불구하고, 달력 주기의 변화는 종말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마야 문명의 전성기


            기원 후 200년에서 900년 사이의 고전기 동안, 마야 문명은 정점에 달했습니다. 건축 또한 그 정점을 찍었죠. 마야인들은 피라미드 형태의 사원과 궁전처럼 보이는 웅장한 건물들을 정교하게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건물들이 실제로 엘리트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기능을 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마야 도시로는 팔렝케, 치첸 이트사, 티칼, 코판, 칼라크물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야 사회는 공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아니었다고 해요. 대신에 도시 국가들과 지방 통치자들은 평화로운 공존과 통제권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를 오갔죠. 호야 데 세렌 같은 일부 장소들은 엘리트 지배자 대신 집단 통치에 의해 운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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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아테말라의 아야 유적지- 티칼, 사진: terra-guatemala] 


            마야의 건축과 예술은 깊은 종교적 신념을 반영했습니다. 마야인들은 K’uh와 k’uhul의 신념을 받아들였는데, 이는 모든 것, 심지어 무생물에서도 신성함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죠. 또 다시, 옥수수는 그들의 신념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마야 신 중 하나는 옥수수 신, 훈 훈아푸였고, 마야 전통에 따르면 신들은 처음에는 진흙으로, 그 다음에는 나무로, 마지막에는 옥수수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마야인들은 다양한 의식을 통해 신들을 숭배했습니다. 그 중에는 인간 희생과 피를 흘리는 의식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관습은 현대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습니다. 마야의 스포츠인 피츠는 축구의 선구자로, 자체적인 의례적 함의를 가지고 있었죠. 연구자들은 이 게임의 패자들이 때때로 마야 태양과 달 신을 기리기 위해 희생되었다고 생각한답니다. 이 신들은 마야 창조 신화인 '포폴 부'에서 같은 게임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고대 마야인들은 뛰어난 천문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잡한 달력 시스템을 개발했으며, 이는 태양, 달, 그리고 다른 천체들의 운동을 관측하는 데 기반을 두었습니다. 마야 달력은 세 가지 주요 체계를 포함했는데, 이 중 하나인 '장기간의 달력(Long Count)'은 우주 창조의 시작으로부터 시간을 계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마야인들은 또한 태양과 달의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정교한 관측소와 별자리를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천문학적 지식은 그들의 종교적 의식, 건축, 그리고 농업 사이클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천체의 움직임에 맞춰 중요한 행사를 계획하고, 건축물을 천체의 위치에 맞추어 배치했습니다. 이러한 고대 마야인들의 천문학적 관찰과 지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연구되고 감탄받는 분야입니다.


            historyskil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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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마야의 천문대, 사진:historyskills] 


            마야 문명의 몰락


            일부 북부 도시들은 여전히 번성했지만, 대부분의 마야 중심지들은 기원후 9~10세기에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 간 관계가 악화되고, 전쟁이 증가하며, 무역이 감소하고, 사망률이 상승했죠.


            이 문명의 몰락에 대한 이론은 다양합니다. 하나의 가설은 기후 변화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긴 가뭄과 함께 마야인들이 의존하던 숲을 파괴한 소각 및 벌채 농업 기술이 재앙을 가져왔다는 것이에요. 갑자기 한때 부유했던 도시 중심지들이 황폐한 땅으로 변하면서 마야인들 중 일부는 사망하고 다른 이들은 더 비옥하고 산악 지대인 남쪽으로 흩어졌죠. 치첸 이트사 같은 거대한 도시들이 몰락하면서, 마야판과 같은 도시들이 중요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다른 마야인들은 도시를 완전히 버리고 대신 작은 마을에 정착했죠.


            마야인들은 계속 존재했지만, 마야 문명의 몰락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1500년대에 시작된 유럽의 식민지화 압력에 취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스페인이 1524년경 마야를 완전히 정복했을 때, 마야의 가장 중요한 도시들 대부분은 이미 버려진 상태였죠.


            한편, 새로 도착한 스페인 탐험가들은 그들의 식민지 곳곳에 흩어져 있는 폐허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야 땅을 약탈하고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데 집중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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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약탈을 묘사한 그림, 사진:Alamy] 



            마야 문명의 재발견


            마야 문명에 대한 흔적에 매료된 탐험가들과 연구자들에 의해 1840년대에 마야가 '재발견'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미국의 변호사이자 외교관인 존 로이드 스티븐스와 영국의 예술가이자 건축가인 프레데릭 캐더우드가 중앙 아메리카로 일련의 고고학 탐험을 이끌었죠. 그들은 마야 유적지를 지도에 그리고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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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데릭 캐더우드가 1840년대 캄페체의 볼론첸 우물을 파서 발굴하는 모습, 사진:reddit]  


            이 지역에 폐허가 있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많은 유럽인들은 중앙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원시적이고 지능이 낮다고 여겨, 그들의 발 아래에 있는 역사적 유물을 그들이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스티븐스와 캐더우드는 이러한 생각을 뒤집고 싶어했고, 유적지의 가치와 창조자의 정체를 밝히고자 했죠.


            마야의 옛 영광을 확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연구자는 발견한 것에서 이익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전체 마야 도시를 사서 뉴욕 박물관으로 옮기려고 시도하기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업은 세계가 마야 문명에 주목하게 하고 미래 고고학 발견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마야 고고학 분야는 번창하고 있으며, 현대 발굴을 통해 한때 그것을 재포함했던 정글에서 폐허부터 종교 유물까지 모든 것이 밝혀졌습니다. 지금도 학자들은 여전히 마야와 그들의 야심찬 부상 및 신비로운 몰락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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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스의 마야문명 여행기, 도서 사진: meretsegerbooks] 


            고고학적 유물이 그들의 과거의 전부일지라도, 마야인들은 현재에도 존재한답니다. 현대 중앙 아메리카에는 600만 명 이상의 마야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고대 마야어에서 파생된 30개 이상의 언어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후손들은 또한 마야의 농업, 종교, 토지 관리 전통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수세기에 걸친 도전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화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징표입니다.



            ※ 위 기사의 내용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기사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것입니다. 원문 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history/article/who-were-the-m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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