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기원] 인류 문명의 기원을 찾아서 ⑤ 황하강 문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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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黃河, 황허, Yellow River)는 중국에서는 장강(長江,양쯔강, Yangtze River) 다음으로 긴 강입니다. 칭하이성의 쿤룬산맥에서 발원하여 발해만으로 흘러든다.
길이 5,464km, 유역면적은 75만 2443 ㎢, 중국 대륙에서는 장강 다음으로 길고 세계적으로도 5번째로 긴 강입니다.
큰 하천을 일컫는 일반명사인 하(河)는 원래 이 강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습니다.
강(江)을 의미하는 '강'이라는 단어 역시 '장강'의 고유명사였다고 합니다. 이 둘은 수천년을 지나면서 이제는 한자어권에서는 일반적인 '강'의 의미가 되었구요.
황하 유역은 중국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인 중원을 의미하며, 바로 세계4대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죠.
황하는 칭하이성(青海省) 쿤룬산맥(昆仑山脉)에서 발원하여 칭하이성(青海省), 쓰촨성(四川省), 간쑤성, 닝샤후이족자치구, 네이멍구자치구, 산시성(陕西省, 섬서성), 산시성(山西省), 허난성(河南省) 산둥성의 9개 성 및 구(区)를 지나
최종 산둥성(山东省) 둥잉시(东营市, 동영시)에서 보하이만(渤海湾, 발해만)으로 유입됩니다.
그야말로 중국 대륙을 관통하면서 아우르는 엄청난 길이죠. 그러나 황하는 길이에 비하면 수량이나 유역면적이 상당히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수량은 심각할 정도로 적은 편인데, 건기에는 아예 건천이 될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중요한 지류로는 시안 근처를 지나가는 위수(渭水)가 있습니다.
[범람하는 황하, 사진: EOS]
황하는 중국 황하 문명의 젖줄이었고 중국의 상징이기 때문에 CCTV에서 틀어주는 국가 영상(의용군 진행곡)의 첫머리에는 황하 흙탕물이 힘차게 흐르는 장면이 거의 반드시 들어간다고 합니다.
노란 강물은 여러모로 불편할텐데, 중국에서는 예전에는 황(금)색을 황제의 색깔이라고 여겼죠.
황하의 하류 지역은 중원으로 불립니다. 이 땅은 황하 문명 발상지이며, 과거에 역대 왕조의 수도가 있었던 곳이죠. 황하는 상류, 중류에서 황토 고원을 통해, 많은 지류가 유입하기 때문에, 대량의 황토를 포함하고 있는데,
황하가 흘려 보내는 토사는 연간 16억 톤에 달하는 세계 최대라고 합니다. 그 토사의 퇴적에 의해, 하구 부근에는 광대한 삼각주 지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중류에 위치한 황토 고원은 마지막 빙하기 때 쌓인 수백 미터 두께의 뢰스 퇴적층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강은 이제 남쪽으로 흘러 화북 평원에 이르러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 후에 산둥 반도 북쪽의 현재의 삼각주까지 흐르게 됩니다.
황하의 잦은 범람으로 인해 저지대는 세월이 지나면서 충적층으로 메워졌고, 유로는 수시로 바뀌어 도저히 다스릴 수 없는 강이었다.
하류는 천정천으로 옛날부터 범람하여, 크게 물길을 바꾸어 왔습니다. 기원전 602년 이전에는 발해 북부의 톈진 부근에 하구가 있었고, 태산의 남쪽으로 흘러들었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황하의 수질은 흙탕물 수준으로 이미 한서에서는 '물 1말에 진흙 6되일 정도', 즉 진흙 함량이 60% 라고 기록될 정도였다죠.
이렇게 황하가 이름 그대로 황토빛이 된 이유는, 선사시대 때부터 이어진 '환경파괴'라는 인재(人災)로 인해 토사가 엄청나게 유출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히 진나라~한나라 시기에 시행된 토목 공사 및 농경지 개척을 위해 황하 주변의 숲을 싹 다 베어버리면서 급격히 악화되었다는 거죠.
오죽하면 백년하청(百年河淸), '황하가 맑아지길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사자성어까지 생겨났다고 합니다.
황하는 이처럼 토사가 많이 흐르기 때문에 조금만 강의 흐름이 느려지면 강바닥에 토사가 쌓입니다. 그래서 주변 지역이 평야지대가 되는 뤄양 근방부터는 주변 농토보다 강바닥이 더 높은 천정천(天井川)이 되었지만
주변 제방으로 물이 넘치지 않도록 간신히 막는 상황이라, 홍수가 한번 나면 강의 흐름이 아예 다르게 바뀌어버린다고 합니다. 이 점을 이용해서 황하의 둑을 일부러 터뜨리는 것이 전쟁에서 전술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대륙의 '어머니', 웅장한 황하, 사진: seetao]
우여곡절 끝에 강 하구까지 운반된 진흙은 차곡차곡 퇴적됩니다. 베이징이나 톈진도 역사 이전에는 바다였지만 황하 퇴적으로 생긴 땅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하북 지역의 황하 퇴적 전에는 중원 지역에서 만주 지역은 지리적으로도 연결이 힘들어 중국 기준에서 한민족을 포함한 이민족의 영역이었고
가끔씩 중원 세력이 침략해 점령해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철수하는 일이 반복되었지만 황하 퇴적으로 하북과 만주가 연결되면서 양 세력이 서로를 침범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황하의 강길(河道)의 변천은 역사 기록에만도 총 26회에 이르고, 특히 큰 변화도 9회나 되었습니다.
과거 3천 년 동안 범람과 제방 파괴는 1,500회 이상, 즉 당나라 말기에는 10년에 1번씩 제방이 무너지던 것이 북송 시기에는 3.3년마다 1번으로 제방이 무너지는 일이 잦아졌고,
청나라 시기인 17세기의 제방의 붕괴 주기는 1.89년에 1번으로 더욱 빨라졌습니다. 황하는 가면 갈수록 다스릴 수 없는 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엄청나게 큰 황하는 잦은 홍수와 토사유출로 오히려 재난을 가져다 주는 '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강이 바로 세계 문명의 발상지로 황하 문명의 탄생 및 유지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입니다.
즉 홍수가 나면서 강 주변을 모두 초토화시켰디만, 그 후에는 상류에서 끌어온 많은 토사를 주변 농토에 뿌려주는면서 자연적으로 비옥한 비료를 주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더불어 척박하고 건조한 중원 지역에 부족하나마 수자원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치수를 위해서는 많은 인원이 필요하므로 자연스럽게 비옥한 토지에 대규모의 사람들이 모여 살게되고, 이를 체계적으로 묶을 정치 제도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홍수가 난 후에는 다시 토지구획을 정리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므로 문서 기록과 측량 등의 각종 기술이 발달하게 됩니다.
[황하문명의 건축물, 사진:Global Times]
이것은 나일강의 정기적인 범람에서 발생한 이집트 문명과 너무나도 유사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황하에서 발생한 문명은 오히려 더 나은 자연환경을 가진 양쯔강에서 발생한 문명보다 빠르게 발전하여 결국 양쯔강에서 발생한 문명을 흡수하고 주변을 정복하여 중국 문명으로 가는 기초를 닦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증명하는 흔적을 한자의 구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다스리다'란 뜻의 治(치)는 본래 '물(水)을 조정한다'는 뜻으로 치수를 뜻합니다.
즉 '물을 다스린다'는 것이 바로 모든 것을 다스린다(통치, 정치, 치료...)는 개념 자체로 확장된 것입니다.
다만 이집트의 나일강과 다른 것은, 일정 시기마다 일정 장소에 범람하던 나일강과 달리, 다스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거대한 강이라는 것이죠.
황하 주변은 고대부터 북송 시절까지 중국의 중심지역으로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황하의 황색은 황제의 색으로 지정할 정도로 숭상받았으며,
또한 황하를 통해 하류로 대량으로 공급되는 황토고원의 고운 흙은 질 좋은 벽돌과 기와를 만들기 적합하여 황하 유역 근처의 중국 건통건축은 다양하고 화려한 벽돌과 기와를 사용하는 건축기법이 크게 발달하였습니다.
황하 문명(黄河文明, Yellow River civilization)은 중국 황하 중·하류 유역의 황토 지대에서 발달한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입니다.
세계 4대 문명이라는 것은 본래 중국의 근대 사상가인 량치차오가 정의한 개념으로, 서구에서는 "문명의 요람(cradle of civiliza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문명의 요람(cradle of civilization) 6곳, 사진: alearningafamily]
문명의 요람(cradle of civilization)은 독립적으로 문명이 생성된 장소이자 문화이며, 정착된 도시가 형성되었다는특징이 있는 인간 사회의 일차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문명의 다른 특징으로는 (도시에) 정착한 유목민, 기념비적인 건축, 사회계층과 불평등의 존재, 의사소통을 위한 글쓰기 시스템의 창조 등이 있습니다. 보통 단순한 사회에서 복잡한 사회로 전환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세계적으로 여섯 개의 문명의 요람을 인정합니다.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고대 인도, 고대 중국은 구세계에서 가장 이른 문명으로 여겨지고, 신세계(콜롬버스 발견 이후 개척된 신대륙을 가리킴)에서 문명의 요람은 페루 해안의 카랄 수페 문명과 멕시코의 올멕 문명입니다.
모든 문명의 요람은 애초에 해양 자원에 의존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카랄 수페를 제외하고는 식량 생산을 위해 농업에 의존했습니다.
모든 것은 중앙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잉여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 정치 지도자, 성직자, 그리고 문명 도시 중심지의 공공 사업에 의존했습니다.
"문명의 요람"은 좁은 의미로는 그리스나 로마와 같은 고대 문명(즉, 세계 4대 문명)을 가리키지만, 모두를 합해서 "서양 문명의 요람"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즉 구세계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인더스 문명은 자연지리적인 장벽이 없었기에 지리적으로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받을 수 있었는데 반해, 황하 문명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세 곳의 다른 문명들과는 교류가 힘들었다는 것이 특이한 점입니다.
따라서 중국의 황하문명은 유라시아의 다른 주요 문명들과는 다소 이질적인 발전 방향을 보였다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중국의 황하문명>과 고대 역사 및 왕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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