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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도 문화] 제주의 이야기 유산-아기장수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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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49회 작성일 23-10-2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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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는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는 문화적으로 풍부한 지역으로, 이러한 이야기들은 제주사람들의 삶과 관점을 반영하며 전달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전통적으로 구전으로 전해지며, 관련된 이야기가 함께 전달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야기 유산으로 간주되며, 여전히 살아있는 유산의 현장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제주의 전설과 신화는 이 지역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이야기의 장소와 관련된 발굴 및 보전 작업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야기의 근거로 사용되는 역사적 기록, 문헌 자료, 가족 족보, 구전 자료 등은 이야기의 진실성을 더 강조하며, 제주의 이야기 현장은 이 지역을 '신성성'을 부여하고, 글로벌 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이어도 문화 - 제주의 이야기 유산]은 '2018년 제주학연구센터'에서 발간한 동제목의 연구총서입니다.  

            제주의 문화를 설화나 옛이야기들을 통해 풀어놓은 자료나 책자는 이미 많지만, 아무래도 연구서이다보니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어, 연재물로 소개해 드리기에 적합할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 책은 1부 전설지(인물 전설, 풍수 전설, 자연 전설)와 2부 신화지(제주도내 11곳의 신화)로 나누어 조사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운영하는 '제주학연구센터'의 자료실은 누구나 이용하실 수 있으며, 총서 자료는 언제든지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본 도서에는 다만 사진이 흑백으로만 나와있어, 저희는 좀더 생생한 자료사진을 수집하여 블로그 방문객에게 대신하여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원문의 출처는 아래에 첨된 사이트입니다.  



            1. 아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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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장수 설화, 사진: 교보문고] 



            ‘날개달린 아기장수’나 장사와 같은 힘센 인물들은 마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 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 제주의 ‘날개달린 아기장수’ 류의 전설은 날개가 잘린 채 힘이 센 장사로 살아남게 되는 장사 영웅담 전개가 특징이다. 

            제주에 남아 전해지는 ‘날개달린 아기장수’ 전설은 그 스토리 유형이 다양하며, 제주 전역에서 전해지고 있다. 제주 전설 속의 아기장수는 ‘강정마을의 쌍둥이 아기장수’, ‘날개달린 밀양박씨’, ‘홍장사’, ‘한연한배임재’, ‘문사령’과 같은 유형에서 찾을 수 있다. 

            제주는 지세(地勢)가 좋아서 장차 왕이 태어날 땅, 곧 왕후지지(王侯之地)로서 ‘날개 달린 아기장수’의 출현은 제주사람들의 오랫동안 지녀왔던 소망과 염원의 반영이기도 했다. 

            아기장수는 태어나서 한 시대 상황에 의한 횡포와 탄압을 거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적 갈등 극복의 방법으로, 끝내 아기장수를 죽이지 않고 날개만 자르고 살아가게 한다는 내용이다. 

            제주의 아기장수 이야기는 비범한 인물의 일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점, 평민 집안에서 장수의 출현을 터부시하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는 점, 육지부의 경우는 반사회적인 아기장수를 죽여서 거부한데 반해 제주사람들은 아기장수를 거부 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 특징이다. 

            결국 제주의 아기장수는 날개 없이 힘이 센 장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지만, 제주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날개달린 아기장수를 살려 두었다. 

            곧 아기장수의 날개를 자르는 행위는 비상하는 욕망의 일시적 좌절이라 할 수 있으며, 행동하는 비범성과 해적을 무찌를 수 있는 장사의 힘이 내포된다. 

            영웅적 면모를 강조하는 아기장수의 탄생은 자연스레 풍수지리적인 면이 강하게 반 영되는데, 조부의 묘가 ‘장군대좌형’이거나, 이장을 위해 묘를 파면 황새(소)가 날개를 펴서 퍼덕이고 있거나, 무덤 속에서 콩은 말이 되고, 팥은 군사가 되었다는 등의 스토리 가 고정적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풍수전설은 아기장수를 염원했던 희망과 기대 이상이며, 왕이나 왕후가 태어 나는 왕후지지의 땅을 지키기 위한 전설과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기장수 설화는 가난한 평민의 집에 날개 달린 아기장수가 태어났으나 꿈을 펴지 못하고 날개가 잘려 일찍 죽었다는 내용의 설화. 신이담(神異譚-초인간적인 행위를 내포하고 있는 이야기를 다룬 설화. 기원담(起源譚)·변신담(變身譚)·응보담(應報譚)·초인담(超人譚) 등으로 세분할 수 있음)에 속한다.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 설화에는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대중의 심리가 표현된 신화적 내용이 들어 있다. 아기장수는 미래의 주인으로 설정되어 있고, 부모와 관군은 현재 만족과 평안을 누리는 현실적 존재이다. 이 설화의 비극적 요인은 좁은 활동 공간, 

            아기장수와 용마의 시간의 불일치, 영웅이 어린아이였다는 점, 안신보명(安身保命)하려는 부모의 보수적인 벽 등이다. 주목되는 설화 요소인 날개는 우리나라 건국신화에 나오는 하늘과 새와 같은 맥락으로, 힘의 근원이 되거나 평민의 꿈을 상징하기도 한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민속문화대백과사전



            구좌읍 평대리 부대각 부시흥(夫時興)


            구좌읍 평대리 해안가 일명 속칭 ‘배드린개’에는 통정대부 만호(萬戶) 부시흥(夫時興)의 망사비(望思碑)가 있다. 그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아기장수로 태어났으며, 힘이 워낙 세어서 세칭 ‘부대각(夫大角, 대각은 '장군을 의미하는 것으로 안다. 

            신라시대 관직으로 대각간(大角干)에서 온 것으로 봄​.)’으로 불렸다. 집안에서 전해지는 부대각 관련 전설이나, 묘의 비석, 족보 등에는 기존의 아기장수 이야기를 차용하여 실제 인물의 행적을 바탕으로 전해져왔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부시흥은 인조 4년(1626) 구좌읍 평대리에서 어매장군(禦侮將軍) 사과 벼슬을 지낸 부경필(夫景弼) 공과 숙인 김해김씨 사이에서 날개 달린 채 태어났다. 그는 무과에 급제하여 숙종 4년(1678)에 벼슬이 겸사복에 올랐으며, 훗날 조정에서는 통정대부 만호를 제수하였다. 

            그는 6대에 걸쳐 어매장군을 지낸 무가혈통을 이어 받았으므로 비력(팔힘, 臂力)이 절륜하여 세칭 ‘부대각’이라 불렸는데, 그는 늘 사람들을 위해서 일했으므로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어모장군(禦侮將軍)은 조선시대, 무관(武官)의 정3품 당하관(堂下官)의 관계(官階). 세조(世祖) 12년(1466)에 과의장군(果毅將軍)을 고친 이름이다.

            네이버한자사전 


            당시의 권력자들은 그의 6대조 묘가 성산읍 오조리 식산봉 정상에 있는 장군석을 정면으로 비추었기 때문에 희세의 대장군이 태어난다는 설을 믿고 있었다. 그들은 군사를 보내어 장군석을 자르고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는 부대각을 제거하여야 한다고 믿고 호시탐탐 그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한편 그때 궁궐에서는 산상의 말(馬)을 잡으면 천금상 만호(萬戶, 만호라는 벼슬은 초기에는 군사를 이끄는 책임자로 제주도지사에 해당하는 제주목사가 겸하던 직책이었다고 한다.)를 주겠다고 장수를 모집하자, 

            실로 엮은 베로 열려마를 잡은 후 궁궐로 들어와 명월만호 칙지를 받아서 제주로 귀임하려고 했다. 

            수십 명의 제주 사람들을 배에 태우고 제주를 향해 오다가 동서남북을 분간하지 못하고 배가 기울자, 자신이라도 배에서 내리면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 쇠방석을 타고 물로 뛰어 내려 죽으니 날이 환하게 밝아졌는데, 신임 칙지를 가진 종의 배가 먼저 도착하여 부만호의 배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배는 오지 않고 끝내 행방이 묘연하였다. 

            지역민들은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해 하다가 이 마을 ‘암태역밭’에 망부의 한을 남기고 세상을 하직한 숙부인 경주 김씨의 실묘에 상의 ‘혼적삼’을 대신하여 무덤을 조성하였다. 만호 부시흥 공의 행적은 지금까지도 후손 필사본이나 전설과 무당들의 구술로서 무성하게 전해지고 있는데, 

            인물 부대각의 희생정신을 선양할 가치가 있어서 지역민들은 후일 그 애석한 사연과 공의 유덕을 기리어 평대리 ‘배드린개(제주방언으로 '선박들이 정박하고 배를 매는 포구'라는 의미)’에 망사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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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대리 해안가에 위치한 '만호 부시흥공 망사비, 萬戶 夫時興 望思碑'] 



            만호 선조가 고향에 살다 서울로 가는 도중에 선배들이 활 연습하는 것을 보고서 만호 조상이 활을 좀 빌려 달라고 하자, 선배 한사람이 자기 활을 주니, 나는 그 활은 필요가 없고, 거기에 세워진 끈 방외 활이나 주면 쏘아 보겠다고 하니 그러라 할 때, 

            신발을 만만히 하고 수십 명 선배 들이 만호 조상의 등에다 지웠다. 만호 조상이 활을 바로 하면서 어기여차 하더니 활은 산산조각이 되고, 그대로 도망가다가 남의 집에 달려들어 집을 빌려달라고 하여놓고,

             소와 구시(소여물통, 구유)를 이문(집앞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운 문)에 메여달라고 하였다.


            만호 조상은 아래를 풀고서 방안에 가만히 누워 있으니 선배들이 그 집을 찾아가서, 왜 한사람이 여기 왔느냐고 할 때에 만호 조상은 그 말을 듣고, “여기 왔다” 하면서 나가더니만 만호 조상의 말씀이 무슨 소와 구시는 매여 있소 하면서, 한손에 소를 들 고 한손에 구시를 들었다. 

            선배들은 그것을 보고 그대로 도망치니 만호 조상이 서울로 올라가고 있는 차에, 서울 궁내에서는 산상에 사는 열려마를 잡아들이는 자는 천금상 만호를 봉하여 준다는 방을 내었다. 

            서울 사는 한분이 있다가 말하기를 “산상에 사는 열려마를 잡아들일 자는 제주에 사는 부씨라고 한 사람이 여기에 와 있습니다” 고 말하였고, 그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여 가니, 자기가 산상에 있는 열려마를 잡아들일 수 있느냐고 하자, 할 수 없이 “하여 보겠습니다” 고 말하였다.

            이어 안내인 한사람 내여 놓으며 “씰베 백발만 구하여 달라”고 하여서 안내인하고 그 현장에 가서 문의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산에서 말이 내려 올 적 에는 벵역(벽력같은)같은 소리를 치며 내려와서, 이 연못에 저 커다란 팽자나무에다 야게(목)를 밀어놓고 물을 먹어서 나갈 적에도 

            다시 야게를 밀고 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만호 조상은 연못에 있는 팽나무를 매어 던져두고 연못에 가만히 서 있으니 열두시가 되자마자 산상에서 말이 소리치며 내려와서 만호 조상의 몸에 야게를 밀듯 하다가 그대로 물을 먹어 나갈 적에는 야게를 슬쩍 미니, 만호 조상은 “나를 모르냐” 고 소리를 지르며 말 위에 타 앉아 하늘 위로 올라갔다. 

            하늘로 올라간 조상이 땅에 내려옴을 알지 못하여, 안내인은 궁내에 달려가서 “애무한 백성이 죽었습니다” 라고 말하자마자 만호 조상은 말을 타고 궁내에 달려들었고, 칭찬하면서 무엇을 요구하느냐고 하니, 만호 조상님이 말씀하시기를 “만호 벼슬을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만호칙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집에 살다가 서쪽에서 환상창고를 책임지어서 지어주다가, 아무리 하여도 마음이 갑갑하여서 배 둘에 수십 명의 백성들을 실어서 육지에 가서 한도를 지키겠다고 하여 나가다가 주야 십사일간이나 동서남북을 알지 못하니 만호 조상은 쇠방석을 물에 던져 그 위에 올라앉아도 내려가지를 않았다.

            만호 조상님이 말씀 하기를 애무한 백성들을 죽일 필요 없으나, 혼자 죽으면 수십 명의 백성들은 살 수가 있지 않느 냐고 하면서 쇠몽둥이로 서른 네 번을 내려놓으니, 그대로 물속에 내려간 후 30분이 지난 후에 훤하게 날이 새었다고 합니다. 



            만호는 조선 후기 무관직 벼슬(종 4품)로 과거 명월진성 주둔군의 사령관이자 행정 책임자였다. 정확한 명칭은 명월진 수군만호로 현재 해군 부대장 정도에 해당한다. 명월진에는 영조 40년(1764)부터 고종 32년(1895)까지 131년간 총 112명의 만호가 재임했다. 

            비석 뒤에는 ‘문화의 21세기에 부응한 문화예술 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명월성지 복원사업과 병행해 제주방어사령부에서 보존·관리되던 만호비 4기와 동명리에 있던 1기 등 만호 공덕비 5기와 함께 역대 만호 명단비를 세운다. 

            현세는 물론 후세에 조상의 얼이 숨 쉬는 소중한 전통문화를 이해시키고 자랑스러운 지역문화를 창조하는 계기를 삼고자 한다.’라고 적혀있다.

            -제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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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월진 역대 만호 명단비, 출처: 제주일보] 


            [명월진 역대 만호 명단비, 출처: 제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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