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의 이해 2] 선박과 조선술_선사시대 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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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의 이해 2] 선박과 조선술_선사시대 선박
바다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기초적인 것부터 풀어가기 위한 [한국해양사] 시간입니다.
오늘은 선박의 역사를 되집어 보는 시간 중 선사시대의 선박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선박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없으니, 과연 세계에서 가장 오래 전
선박을 만든 민족들에게는 어떠한 흔적이 남아 있는지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사진들은 원교재(한국해양사)에 있는 사진자료가 흑백으로 나와있기에 이해를 돕기위해
컬러로 된 유사한 사진을 찾아 올린 것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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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이 언제부터 출현하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구석기시대 네안데르탈인의 지브롤터해협 도항설(渡航說)이나 5~6만 년 전
오스트레일리아로의 인류 이동설로 미루어 볼 때, 구석기시대부터는 어떤 형태로든
인류가 바다를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1. 이집트의 선박(BC 3500년), (L. casson, Ships and Seamanship in the Ancient World]
고대 선박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수상 이동 수단은 통나무였으며,
손이나 발을 물갈퀴(paddle)로 이용하여 그 추진력을 얻었다.
그 후 차츰 발전하여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가죽배, 갈대나 대나무를 묶어서 만든 뗏목배,
통나무를 파내서 만든 통나무배 등이 출현하였는데, 이러한 원시적인 선박들이 등장한 시기는
BC 8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보다 발전된 모습으로서 고고학적으로 드러난
오래된 선박의 증거는 이집트 선왕조시대(先王朝時代)인 BC 3500년경의 유물이다(그림 1).
[그림 2. 메소포타미아의 바구니배]
그러나 이집트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조선술의 발전이 전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BC 3400년경 메소포타미아 하천에서 사용되던 선박의 모습은 나뭇가지로 만든 바구니 형태이다(그림 2).
[고대 메소포타미아 배의 흔한 이미지]
일본의 죠몽시대(繩文時代) 유물인 환목주(丸木舟)는 전형적인 통나무배다(그림 3).
이처럼 조선술의 발전은 지역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 죠몽시대 : 죠몽문화의 시대 구분은 토기를 기준으로 초창기(BC 1만 년~BC 7천년),
조기(BC 7천년~BC 5천년), 전기 (BC 5천년~BC 3천년), 중기(BC 3천년~BC 2천년),
후기(BC 2천년~BC 1천년), 만기(BC 1 천년~BC 400년)로 나 뉜다.
[그림 3. 일본의 환목주(죠몽 후기)와 유사한 나무배]
중국의 경우는 상(商, 殷)나라 시대의 갑골문자에 이미 배‘舟’나 돛‘帆’을 표시하는 문자가 등장하였다.
선박의 유물로는 전국시대의 통나무배가 출토된 바 있다.(그림 4)
[그림 4. 중국의 고대 나무배를 상상한 조각]
또 전국시대의 구리병(銅壺) 표면에 새겨진 누선도(樓船圖)에도
상당히 발달된 구조선(構造船)의 모습이 나타난다(그림 5).
[그림 5. 중국의 누선도(전국시대)(中國航海學會, 『中國航海史(古代航海史)』]
우리나라는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BC 6000년경으 로 추정되는 통나무배가 출토되었다(그림 6).
[그림 6. 창녕 비봉리의 통나무배 (BC 6000년)]
또 함경북도 서포항의 신석기시대 유적 에서 출토된 고래뼈로 만들어진 노의
연대는 BC 3000년기 후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러한 유물들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이른 시기부터 선박이 사용되었고, 그 선박의 형태는 중국이나 일본의 출토 사례와
비슷한 통나무배였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BC 1000~300)에 들어서면 울주 대곡리 반구대의
암각화에서 보듯이(그림 7) 고래잡이 선박이 등장하였다.
[그림 7. 울주 반구대 암각화 탁본(청동기시대)]
한편,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제주도의 테우나 강원도 정동진의 토막배는 여러 개의
통나무를 엮어서 만든 고기잡이용 뗏목배인데, 돛을 달아 사용되기도 한다.
[제주의 옛 테우]
이것은 우리 민족이 일찍부터 사용하였던 원시 선박의 형태가 오늘날까지 잔존되어온 것으로 보인다.
선사시대에 해로는 육로에 비하여 매우 유리한 교통로였다.
육로는 숲과 해충, 맹수와 적대적인 이민족, 그 리고 지형 장애물들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다.
그러나 해로는 이러한 장애물들이 없기 때문에 손쉽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박의 출현이 수레보다도 빨랐던 것이다.
※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BC 2000년경에, 중국에서는 은나라 때 사용된 수레가 각각 발견되었다.
인류가 선박에 돛을 이용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돛의 출현에 관한 가장 오래된 증거는 BC 3100년경 이집트 항아리에 그려진 범선의 모습(그림 8)이다.
[그림 8. 이집트의 범선(약 BC 3000년)]
동양의 경우에 범‘帆’자가 나타나는 중국 갑골문 유물(그림 9)의
연대는 하(夏)나라와 상나라(殷)의 교대기이다.
근래의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의하면, 하왕조는 BC 21세기에서 BC 16세기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므로 중국에서는 적어도 BC 16세 기 이전에 돛이 출현하였다.
한대(漢代)에는 연범(筵帆) 곧 대자리로 만든 돛이 사용되었다.
후한대에 이르러서는 포범(布帆)이 사용되었고, 3세기에는
여러 개의 돛을 동시에 사용한 다장선(多檣船)까지 등장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돛의 등장에 관한 고고학적 자료가 희박하다.
혹자는 함경북도 나진 초도 유적을 근거로 BC 2000년기 후반에 돛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 하기도 한다.
그런데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48년에 허황옥(許黃玉)이 돛을 단 선박을 타고 왔다고 하였다.
※ 허황후(許皇后, ?~188)라고도 하며, 김해김씨(金海金氏)·김해허씨(金海許氏)의 시조모이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 駕洛國記>에 따르면 본래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陁國)의 공주인데
부왕(父王)과 왕후가 꿈에 상제(上帝)의 명을 받아 공주를 가락국 수로왕의 배필이 되게 하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허황옥 [許黃玉],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림 9. 중국 갑골문자]
또 『일본서기』 200년(진구神功 즉위년 : 실제연대는 320) 기사에 의하면,
신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와니쓰(和珥津)를 출발한 범선이 순조로운 바람으로 인해
노를 사용하지 않고 신라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이 시기의 『일본서기』 연대는 二回甲(120년)을 인상해야 실제와 맞다.
[일본서기, 출처: 동북아역사재단]
이러한 문헌 기록들로 미루어 보면, 한반도에서는 원삼국시대(0~300) 이전에 이미 돛이 사용되었던 것이 확실하다.
[항해의 이해 2] 선박과 조선술_선사시대 선박 ieodoresearchkorea ・ 2023. 7. 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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