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기원] 인류 문명의 기원을 찾아서 ⑤ 황하강 문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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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청동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이 늦었기 때문에 황하 문명이 다른 주요 문명에 비해 늦게 시작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청동기의 사용이 문명의 필수 요소는 아니라고 합니다.
19세기 유럽의 사학계에서는 한때 그런 기준이 있었지만, 당시 서유럽이 집중적으로 연구하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 중심 기준이기에 현대 학계에서는 청동기 사용 여부를 엄격하게 적용하지는 않습니다.
서구에서 4대 문명 대신 사용하는 개념인 '문명의 요람(Cradle of civilization)'에는 아메리카 대륙 문명도 포함되어 있는데,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은 석기 시대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속칭 세계 4대 문명과 함께 문명의 요람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다만 청동기가 문제가 아니라 문자,도시,하수도,성문법의 발달 등 일반적으로 문명의 요소라 여겨지는 것들의 발굴연대가 아무래도 이집트,메소포타미아 등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늦기는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하상주단대공정'을 시행하여 중국문명의 성립역사를 이집트 수준으로 늘리려는 국가단위의 역사왜곡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애초에 동아시아는 소위 말하는 4대 문명 중 남아프리카를 뛰쳐나온 인류가 가장 늦게 도달한 당도한 곳이기때문에 그 시작이 다른 지역의 문명보다 늦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말이죠.
[산시성과 허난성을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부른다, 사진:한국일보]
어쨌거나 주로 유물이 발견되는 지역은 황하가 범람원을 형성하는 지금의 산시성, 허난성 부근이었습니다.
황하 문명의 근거가 되는 황하 근방은 홍수가 수시로 일어나 흙탕물이 흘러들어 오는데 이때 농사에 도움이 되는 영양분도 같이 실려오기 때문에 농지가 발달하였고(이집트의 예에서와 같이)
또한 이러한 범람은 관개와 치수 기술, 건축 기술 및 대형 정치 권력의 출현을 촉진시켰던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고대 하왕조 전설의 개조인 우임금이 치수를 중요시하였다는 것이 고대의 치수 중요성을 설명해줍니다.
그 외에도 허베이성 등 하류 지방에서도 유물이 꾸준히 발굴되고 있으며, 황하 이외에도 장강(양쯔강) 일대나 쓰촨 지역에서도 유적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 문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는 추세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현재 중국 학자들은 황하문명보다 빠른 시기 나타난 홍산문화(紅山文化)를 주목하고 있는데,
홍산문화 요하 유역의 사람들 일부가 기후 등 환경변화로 인해 대량 남쪽으로 이동하여 해당 지역인들을 거의 다 몰아내고 황하 지역에 정착하여 황하문명을 이뤄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홍산문화는 중국 랴오닝 성 일대의 요동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홍산 문화의 큰 특징인 빗살무늬 토기는 한반도 전역에 발견되는 빗살무늬 토기와 같고 적성총이라는 특이한 문화가 있고, 옥(玉) 문명(文明)으로 유명합니다.
이 옥기(玉器)는 한반도 강원도 고성군 패총에서 출토된 옥 귀걸이(7천 년 전)와 전남 여수 안도리(6천 년 전) 등에서 발견된 옥 장신구, 귀걸이와 유사점이 있어 고조선 등 한반도 초기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합니다.
홍산문화는 1908년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는데, 연대는 기원전 4700년 ~ 기원전 2900년 경으로 지금까지 퉁화시(通化市), 츠펑(赤峰, 발견 당시엔 열하성), 링위안(凌源), 젠핑(建平), 차오양(朝陽) 등 500여곳의 유적을 찾아내어,
발견 지역은 만주 지역 퉁화시, 옌산 산맥의 북쪽 랴오허 지류의 랴오허 상류 부근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훙산문화의 옥 장신구, 사진:pinterest]
중국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하면서 싱룽와 문화(興隆窪文化), 훙산 문화, 자오바오거우 문화(趙寶溝文化), 신러 문화(新樂遺跡)등으로 이어지는
요하 일대의 신석기문화를 문화(culture)의 단계를 넘어선 새로운 문명(civilization)으로 간주하여 '랴오허 문명'으로 명명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홍산문화에서 온 사람들은 다른 언어를 사용했으나 황하지역에서 오랜 시간 지나면서 황하문명이 나타났고 황하지역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갑골문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최초의 문자 기록- 상나라의 갑골문자, 자신:sciencedirect]
황하 문명은 선사 시대인 신석기 시대의 페이리강 문화, 라오콴타이 유적, 양사오 문화 등을 거쳐 기원전 1600년경 중국 최초의 왕조로 확인된 상나라를 세웠습니다.
또한 역사적 사실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중국 고대사에서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하(夏)왕조 역시 황하 문명을 칭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양쯔 강 유역의 지방에도 황하 문명과 병행하여 고대 문명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시기 이전부터 양잠에 대한 기록이 있었으며, 비단이 생산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황하 유역의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비단 조직은 거의 BC 3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속에 기록이 있는 최초의 왕조 상나라, 사진: World History Encyclopedia]
또한 황하에서 시작된 초기 중국 문명은 종이, 화약, 나침반 등과 같은 새로운 발명을 통해 전 세계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문화(culture)던 문명(civilization)이던 아시아대륙의 중앙에서 대부분의 땅을 차지하고 있던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통일 국가를 이룩하고자했던 중국의 역사 속에서 단 하나의 문화만 있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입니다.
끊임없는 문화의 멸망성쇠가 곳곳에 있었고, 이들이 연합하고 융합하면서 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돌고 도는 것이 역사가 아닐까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4대문명의 발상지라고 알고 있는 곳들이 모두 물(바다 또는 강)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신대륙의 문명(모두 6대문명이라고 아우르는)에서는 어떻게 인간이 물을 이용했는지-혹은 물의 혜택을 받았는지 궁금해지네요. 다음 시간을 기대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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