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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도 문화] 해민정신의 뿌리-탐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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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78회 작성일 23-11-27 09:09

            본문

            탐라국, 고대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이야기는 매력적입니다. 


            탐라국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존재했던 독립된 정치 체제를 가진 국가로, 탐라국의 명칭은 ‘섬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탐라국의 성립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로 추정되며, 고씨 씨족이 주요 군림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도의 3성 시조신 중 하나인 고을나의 후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당시 사람들은 자연과 밀접한 삶을 살았습니다.

            설화에 의하면, 처음에는 고을나·양을나(良乙那)·부을나(夫乙那) 등 3성의 시조가 모흥혈(毛興穴, 三姓穴)에서 나타나 그 자손들이 나라를 이루고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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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혈, 사진: 비짓제주] 


            탐라국은 백제, 고구려, 신라와 교류하며 외교적 활동을 펼쳤고, 신라 말기에는 고려와의 우호관계를 추구했습니다. 

            1105년에 고려의 지방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으며, 이후 현령이 파견되어 행정을 관장했습니다. 

            탐라의 귀족계급은 조선 초기에 평민화되며 그 역사는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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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유일 화첩 '탐라순력도', 사진:제주일보]​ 


            이 역사는 고대 한반도의 정치, 문화, 사회 구조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며, 특히 제주도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주도의 항해사는 단순한 역사 이야기를 넘어서, 대담한 모험과 인간의 생존 의지, 그리고 문화적 교류의 중요한 증거입니다. 

            탐라 시대부터 제주도는 한반도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유구국(오키나와), 필리핀, 베트남과 같은 멀리 떨어진 지역들과도 활발히 교류했습니다. 

            이러한 교류의 핵심은 바로 바다였습니다. 

            제주의 바닷길은 다른 어떤 바닷길보다도 험난했으며, 당시의 항해 기술로는 예측 불가능한 날씨와 파도에 안전하게 대처하기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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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년 전 베트남에 표류해 돌안온 김대황, 사진: 제주일보] 


            제주에서 출발한 배들은 종종 풍파에 휘말려 멀리 떨어진 땅에 표류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표류는 제주인들에게 다반사였으며, 때로는 이것이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의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최부는 아버지의 초상을 치르러 가던 중 풍파에 휩쓸려 백해(지금의 이어도)를 지나 중국 강남을 거쳐 한양으로 귀환한 경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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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해시말, 사진: 인천일보] 


            또한, 김대황은 제주에서 출항하여 31일간의 표류 끝에 베트남을 방문했으며, 장한철은 추자도에서 표류하여 유구국(오키나와)까지 갔다 돌아온 사례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단순한 항해 기록을 넘어서, 당시의 제주인들이 경험한 도전과 모험, 생존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문순득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그는 홍어 장사로 시작하여 유구국을 거쳐, 당시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필리핀과 포르투갈인이 살던 마카오까지 여행했습니다. 

            그의 여정은 정약전에 의해 『표해시말』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제주인들의 해양 능력과 세계 각지로의 개척 정신을 증명하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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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으로 사라진 류큐왕국, 사진: youtube] 


            문순득의 표류기는 조선 후기의 대담한 해양 모험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문순득은 조선 후기 전라남도 신안군 우이도의 홍어장수였으며, 1801년에 흑산도로 홍어를 사러 갔다가 큰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됩니다. 

            그의 여정은 류큐국(현재의 오키나와)으로 이어졌고, 그곳에서 9개월을 보낸 후 청나라로 가는 조공선에 탑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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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장수 문순득의 아시아 표류기 기념비, 사진:  오마이뉴스] 


            하지만 그 배는 또다시 표류하게 되고, 그 결과로 여송국(현재의 필리핀 루손섬)에 도착하게 됩니다. 

            필리핀에서 9개월간 체류한 후, 그는 마카오로 가는 상선에 몸을 싣고, 중국 대륙을 종단하여 북경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조선의 사신들과 합류하여 1804년 말에 한양에 도착하고, 최종적으로 1805년에 고향 우이도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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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순득의 표류여정, 사진:한겨례신문] 


            이렇게 제주도의 항해사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인간의 무한한 탐험 정신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능력, 그리고 다양한 문화와의 만남을 통한 상호 이해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제주도의 항해사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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