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기원] 인류 문명의 기원을 찾아서 ③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문명 (1)
페이지 정보
본문
지금까지 우리는 바다 또는 강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인류문명의 태동과 발전에 대해 다시 한번 더듬어 보면서, 아테네의 해양문명과 이집트의 나일강 문명을 접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서남아시아(중동) 지역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 알아볼까합니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Μεσοποταμια'에서 온 말로서 '메소'(Μεσο)는 중간이라는 뜻을, '포타'(ποτα)는 강이라는 뜻을 '미아'(μια)는 도시를 의미하는 뜻을 가지고 있어 '두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
메소포타미아는 이라크를 중심으로 한 서아시아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위치한 지역을 포함합니다. 이 지역은 이라크, 시리아의 북동부, 이란의 남서부로 확장됩니다.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 주변을 경계로, 북쪽의 아시리아와 남쪽의 바빌로니아로 구분됩니다.
바빌로니아 지역은 다시 북쪽의 아카드와 남쪽의 수메르로 나뉩니다.
수메르 지역에서 시작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가 형성되었으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은 사막 또는 반사막 지역이며, 연간 강수량은 200mm 미만으로 매우 건조합니다.
그러나 이 강 유역 지역은 연간 강우량이 300mm 이상이며, 강과 관개를 통해 쌀, 밀, 보리, 대추야자 등의 농산물이 생산됩니다.
또한 북부 및 동부의 산악 지역은 중요한 생태지역으로, 키르쿠크와 모술이 중심 지역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지도, 사진:Facebook]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영한 고대문명으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대부분을 포함합니다.
이 문명은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로,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황허강 유역의 황허 문명과 함께 발전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문명을 중심으로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서남아시아의 전체 고대 문명을 일반적으로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 문명에서는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활약했으며, 공통적으로 설형문자가 사용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18세기 후반에 유럽 탐험가와 여행가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조각품과 명문을 포함한 벽돌 조각을 지찾아 돌아왔습니다.
또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과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같은 고전 작품을 통해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해독과 연구는 아시리아학(學)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설형문자의 해독과 고고학적 발굴이 병행되어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중에서 독일의 G.F. 그로테펜트와 영국의 H.C. 롤린슨 등의 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특히 페르시아어를 먼저 해독한 것은 롤린슨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롤린슨의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베히스툰 부조라고 불리는 유명한 비석에 대한 해독입니다. 이 비석은 다리우스 대왕의 전승기념비문으로 쓰여져 있으며, 세 가지 다른 언어로 씌여져 있었습니다.
롤린슨은 이 비문을 성공적으로 해독하여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이해를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여기서 아시리아학(學)은 쐐기 문자를 사용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언어, 역사,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고대 이집트학과 함께 고대 오리엔트 연구의 중요한 분야 중 하나입니다.
이 학문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비밀과 역사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1842년에 주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사로 파견된 프랑스인 P.E. 보타(Paul Emile Botta, 1802~1870)는 아시리아의 수도였던 니네베(Nineveh)와 코르사바드(Khorsabad)를 발굴하였습니다. 그의 발굴 작업은 아시리아학의 탄생을 촉진시켰습니다.
그 결과, 보타는 약 2만 여권의 고문서를 발견했는데, 이것은 아시리아 문명의 많은 측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이 문서들은 아시리아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 등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보타의 발굴 작업은 아시리아학을 시작으로 다른 고고학자들에게도 영감을 주었고, 아시리아 문명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확장되고 발전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노력은 아시리아학의 탄생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이전글[문명의 기원] 인류 문명의 기원을 찾아서 ③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문명 (1)-2 23.10.11
- 다음글[항해의 이해 5] 고대 삼국과 가야의 해외 교섭 23.10.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