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전설이 20세기에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근거가 희박한 주장이다. 이어도해양과학기지와 이어도 전설은 다르므로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와 별개로 전설의 섬은 이여도로 칭하자는 논지도 적절하지 않다. 굳이 이어도에 대한 명칭을 획일적으로 정할 필요는 없고 상황에 따라 편하게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어도에 대한 용어는 통일된 적이 없었다. 우선 이어도 전설이 20세기에 창조되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어도는 지식인들의 창조물이 아니다. 이어도는 하층민들이 만들어낸 신화다. 이러한 연유로 이어도에 대한 문헌 기록이 거의 없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1897년 경 제주에 유배되어 7년 간 머물렀던 이용호(李容鎬)가 남긴 ‘청용만고(聽舂漫稿)’가 있다. ‘방아 찧는 소리처럼 생각 내키는 대로 얽은 시문’이라는 뜻의 ‘청용만고(聽舂漫稿)’란 시문집에서는 ‘이여도(離汝島)’라고 부르고 있다. 그가 사람들에게 들은 이어도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다음은 강봉옥(康奉玉)이 1923년 2월 1일 발행한『開闢』제32호에 “濟州島의 民謠 五十首, 맷돌 가는 여자들의 주고 밧는 노래”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글이 있다. 『開闢』지는 민족주의적인 잡지였다. 강봉옥은 이 글에서 ‘이허도(離虛島)’는 제주도(濟州島) 사람의 전설에 있는 섬(島)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다음에는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가 1933년 『朝鮮』1월호에 발표한 “民謠に現はれた濟州の女”(민요에 나타난 제주여성)이 있다. 이 세편의 글의 저자들은 모두 이어도에 대하여 제주도민들에게서 들은 것을 기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도는 제주하층민들의 고통 속에서 탄생한 이상향이다. 이 전설을 20세기 지식인들이 만들었다는 주장은 이 세편의 글을 면밀히 읽어 본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이어도와 이여도로 구분하여 부르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옛날부터 각기 다르게 부르고 있었다. 이어도, 이여도, 이허도 등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문자를 쓰고 읽기 어려웠던 하층민들이 구전했기 때문에 유사한 여러 이름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도 전설은 말을 중국으로 수송하던 일과 연관되어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강봉옥의 글에서는 말 수송과 관련한 내용이 없으나 이용호(李容鎬)와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는 말 수송과 관련하여 전설이 생겨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는 500년 전에 이어도전설이 생겨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도의 위치에 대하여 이용호(李容鎬), 강봉옥(康奉玉) 그리고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글에서 모두 한국과 중국 사이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편협한 국수주의로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도에 대한 문헌자료나 구전자료를 세밀하게 연구하여 이어도에 대한 이미지를 정교하게 그려나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토대로 상상력을 덧붙여 이어도에 대한 문학작품들이 더 많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도해역을 항해하였던 제주해민들이 파도 속에서 이어도 수중암초를 본 후에 이어도 전설을 탄생시켰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이런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문헌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 제주의 선조들이 꿈꾸던 이상향 이어도는 이미 이룩되었을 것이다. 이어도 이상향은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고 안전한 곳이었다.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이상향이 묘사된 것을 아직까지는 보지 못하였다. 제주가 현재 꿈꾸어야 할 이상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고 개인들까지 마음의 평화로운 곳일 것이다. 이어도문화는 이런 평화문화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이어도 문화가 융성하는 그 날을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