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소리, 2013. 10. 20> '전설속의 이상향' 이어도, 과학기지로 결실 > 언론 속 이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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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 2013. 10. 20> '전설속의 이상향' 이어도, 과학기지로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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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0건 조회 1,611회 작성일 13-10-2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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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속의 이상향' 이어도, 과학기지로 결실 
            [이어도 과학기지 10년] (1) '소코트라 암초'에서 과학기지 설립까지

            이젠 TV에서도, 날씨예보에서도 이어도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이어도와 그 위에 세워진 과학기지가 어떤 곳인지, 그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우리에겐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아는 이들은 드물다. 하지만 이어도를 놓고 중국과 영토분쟁이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안다. 동북아가 한중일 사이에 영토분쟁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갈등 중심지로 부삭되고 있다. 독도를 사이에 둔 한일,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 댜오), 러일간 쿠릴열도 분쟁도 이 지역을 갈등 지역으로 몰아가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동북아 갈등 중심지에 있는 이어도 과학기지 설치 10주년을 맞아 이어도의 발전적인 활용방안과 평화적인 문제해결방안을 몇 차례에 나눠 연재한다. 학술적 도움을 준 이어도연구회에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주>

            이어도는 제주도에서 남쪽으로 149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수중 암초다. 가장 얕은 곳이 해수면 아래 약 4.6m이며, 수심 40m를 기준으로 할 경우 남북으로 약 600m, 동서로는 약 750m에 이른다. 정상부를 기준으로 남쪽과 동쪽은 급경사를, 북쪽과 서쪽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본래 제주에서 이어도는 제주 전설 속의 이상향이다. 이 섬을 보면 돌아올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파고가 10m 이상되는 경우에만 이 암초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당시 어선으로는 그런 급박한 해상 상황에서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 아주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어도, 전설 밖으로 나오다

            원래 이어도는 발견 당시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01년 영국 화물선 소코트라호가 일본과 상해를 잇는 노선을 항해하다가 이 암초에 부딪쳤다 해서 이렇게 명명됐다. 

            영국 해군 수로국이 측량선 워터워치호를 보내 측량에 성공하면서 수로지와 해도에 공식 기재된다. 그들은 이 암초의 존재를 일본 등 각국 수로국에 통보했고, 동중국해상을 왕래하는 선박들에게 이 암초의 존재가 알려졌다.

            일본이 동중국해역을 지배하게 되자 이들 역시 민간 선박과 함대의 안전을 위해 자신들의 해도에 암초를 기재하고 이를 피해서 다니도록 했다. 그러던 중 1937년 일본과 중국을 잇는 해저전선을 부설하게 되자 소코트라 암초의 존재에 주목하게 됐고 그 위에 중계기지를 건설해 하나의 섬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것은 계획에 그쳤고, 전쟁이 끝나면서 그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됐다.

            그 다음은 한국이었다. 한국은 1951년 해군 탐사로 시작해 정부와 민간기관이 여러 차례 탐사를 시도했고, 1984년에는 KBS와 제주대학교 해양대학 교수팀이 현지 확인과 측량에 성공했다.

            1986년, 국립해양조사원(구 수로국)은 이 부근을 조사하며 지난 1963년 이어도 해역에서 침몰한 중국 화물선 약진호 등과 같은 선박 좌초 사고 등을 방지하기 위해 등대시설을 포함한 해양, 기상관측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1987년 해운항만청이 선박의 안전 항해를 위해 등부표를 설치했고, 1996년에는 종합해양기상관측부이가 설치됐다. 이들 부이는 지속적으로 관측을 수행했으나 이어도 해역의 거친 파도 때문에 유실되고 파손됐다. 때문에 고정식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997년 한국해양연구소와 KBS, 제주대학교에서 공동으로 이어도 현장 조사를 수행했다. 8월과 10월 두 번 이뤄진 조사에서는 이어도 정상 부분의 해양생물과 해저지형 수중촬영, 지형 조사가 이뤄졌고 ‘해양입국’이 각인된 크리스탈 조형물을 수중에 안치했다.

            1998년 과학기지 운영방안이 현실화 됐다. 2000년에는 과업지시서와 공사시방서를 통해 제작 설치 업체와 책임감리 업체도 결정이 됐다. 2002년 10월 하부구조 설치가 완료됐고, 2003년 4월과 5월 상부구조가 마무리됐다. 이어도 과학기지는 그렇게 2003년 6월 11일 최종 준공했다.

             

            1984년 제주대 탐사 일대 전환점
             
            1984년 제주대 해양대학 탐사팀과 KBS의 이어도 탐사는 일종의 전환점이었다. 당시 KBS와 제주대학교의 파랑도 탐사반은 5월 이어도의 위치와 규모, 수심, 지질, 생물, 해양물리학적 특성에 대해 기초적인 조사를 체계적으로 수행했다. 앞서 4월에는 한국해양소년단 제주연맹의 탐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제주대-KBS 팀의 탐사는 이어도 최초의 본격적인 과학조사라는 의의를 지닌다. 탐사결과는 ‘소코트라 암초 학술조사 결과보고’라는 미발행 보고서로 작성됐다. 여기에는 이미 해상구조물을 설치해 해상기상관측탑, 어업전진기지, 해상공항, 영해활동영역 확대, 군사적 목적 등으로 이용하자는 의견이 포함돼 있다.

            심재설 한국해양연구원 박사는 지난해 6월 제주에서 열린  ‘1984년 이어도탐사 회고 집담회’에서 “1984년 시작된 과학조사, 관측 연구 성과는 이어도 기지를 설계하고 건설하는 귀중한 기초자료로 활용됐다”며 “1984년 조사는 이어도 해역 자료의 첫 페이저로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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