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2012.7.17)팽창전략 VS 포위전략… 中·美 ‘아시아 패권 충돌’
페이지 정보
본문
‘영토(領土)’의 사전적 정의는 ‘국제법적으로 국가의 통치권이 미치는 구역’이다. 역사적으로는 ‘황제나 왕의 칙령이 닿는 땅’을 의미했다. 현대국가에서 ‘영공’과 ‘영해’의 개념이 추가되면서 입체적 공간으로서의 국토는 국가의 물리적 구성요건이 됐다. 영토를 관할하는 권리인 ‘영유권’은 인접국가들 사이에 늘 갈등의 불씨가 되곤 했다. 한 지역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당사국들의 주장이 겹치면서 같은 땅에 대한 서로 다른 논리가 충돌의 교집합을 이뤄왔다. 최근 동아시아가 영유권 분쟁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그 배경에는 당사국들의 팽창하는 패권 야욕이 도사리고 있다. 일본이 과거진행형이었다면 중국은 현재진행형의 모습이고, 미국은 미래진행형으로 옮아가는 형국이다. 현재 시점에서 동아시아의 영토분쟁은 지역 내 영향력을 둘러싼 중국의 ‘굴기’와 역내 질서의 재편을 경계하는 미국의 ‘결기’가 충돌하는 모양새다.
◇남쿠릴열도: ‘꾸릴 오스뜨로바’ vs ‘북방영토(北方領土)’
쿠릴열도는 러시아의 캄차카반도와 일본 홋카이도 사이에 위치한 화산열도로 30개 이상의 섬들로 이뤄져 있다. 영유권 분쟁의 대상인 4개 섬은 열도 최남단에 위치한 이투루프(일본명·擇捉), 쿠나시르(國後),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 군도를 말한다. 한때 일본령 지시마(千島)라고 불렸던 이 지역은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구소련이 점령했는데, 이후 일본이 ‘북방영토’라고 부르며 끈질기게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 국경수비대 소속 순시선이 쿠릴 해역에서 일본 선박을 나포하는 사건이 벌어져 양국 간의 외교전으로 비화되는가 하면 지난 3일에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가 방문해 일본정부가 주일 러시아 대사를 불러 항의하는 사태로 이어지기도 했다.
올 들어 러시아 장거리 전략 폭격기들이 이 지역과 일본 연안을 넘나들며 위협적인 초계비행을 수차례 실시해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들이 출동하는 등 쿠릴열도 4개 섬은 군사적 긴장감이 감도는 여전히 식지 않는 땅이다.
◇동중국해: ‘센카쿠(尖閣)열도’ vs ‘댜오위다오(釣魚島)’
센카쿠 또는 댜오위다오로 불리며 중국과 일본 간 영유권 분쟁의 상징이 된 돌섬들은 대만과 류큐 제도 사이에 있다. 다섯 개의 무인도와 3개의 암초로 구성된 동중국해 남서부의 군도(群島)는 일본이 실효적 지배를 선언했지만 중국이 대만과 함께 영유권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곳이다.
2010년 일본 순시선이 중국 어선을 나포해 1년 가까이 갈등을 빚어온 이래 최근 일본의 섬 국유화 시도에 맞서 중국 정부가 순시선을 파견하고 부근에서 상륙훈련을 실시하는 등 물리적 대립이 강경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남중국해 스카보러섬: ‘파나타그 사주(Panatag Shoal)’ vs ‘황옌다오(黃巖島)’
필리핀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스카보러(Scarborough)섬은 돌과 산호초, 작은 섬으로 구성된 불모지로 필리핀에서 약 230㎞, 중국에서 약 1200㎞ 정도 떨어져 있다.
섬보다는 모래톱 환초에 가까운 이곳을 두고 양국 선박들이 지난 4월부터 두 달 동안 일촉즉발의 대치를 이어오다 최근 철수했는데 양국이 서로에게 ‘조심하라’는 논평을 내거나 ‘귀찮은 모기 같은 나라’와 같은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팽팽한 신경전을 병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카보러섬은 자칫 무력분쟁으로 번질 위험성이 큰 지역으로 영유권을 둘러싼 긴장이 중국과 미국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중국이 지난해 3월 해군 함정을 동원해 섬 탐사에 나선 필리핀 선박을 가로막으며 무력시위를 벌였는가 하면, 필리핀은 최근 미국과 합동 군사훈련을 진행하며 남중국해에 미군 정찰기의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 ‘난사군도(南沙群島)’ vs ‘쯔엉사군도’
스프래틀리 제도(Spratly islands)는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영유권 다툼이 복잡하게 맞물린 곳으로 약 100개의 무인도와 환초, 모래톱으로 이뤄져 있다.
이곳의 섬들은 지정학적으로 인도양과 태평양을 중개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중국에 반환된 이래 1970년대에 다시 남베트남의 영토로 편입됐다. 이후 80년대에는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브루나이가 저마다 영유권을 주장하며 병력을 주둔시키는 등 복잡하고 다원적인 갈등이 반복돼 왔다.
이곳의 긴장 상황은 최근에 더욱 노골화되는 양상으로 베트남이 지난 6월 전투기 2대로 이 지역에서 초계비행을 감행해 중국이 크게 반발했고, 중국 역시 이 일대에 해양감시선 편대를 파견해 주변국들의 항의를 받았다. 최근 현지에 초등학교를 설립했던 필리핀도 해안경비대 병력을 추가로 배치하며 점유권을 강화하고 있다.
◇남중국해 파라셀 제도: ‘시사군도(西沙群島)’ vs ‘호앙사군도’
산호초로 이뤄진 수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는 파라셀 제도(Paracel islands)에서도 중국과 베트남이 최근 치열한 영유권 분쟁을 재연하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해군 초계정이 베트남 어선에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4월에는 중국 국가여유국이 분쟁 해역에 유람선을 보내 베트남 정부의 강력한 항의를 유발했다.
중국은 1974년 해군 함정과 전투기까지 동원해 치열한 교전을 벌인 끝에 베트남으로부터 이곳을 점령했는데, 파라셀 제도 장악 이후 이곳의 가장 큰 섬인 용싱다오(永興島)에 2.5㎞ 길이의 활주로를 건설하고 서사·남사·중사군도를 관할하는 싼사시(三沙市)를 설치하는 등 실효지배에 주력하고 있다.
◇대륙붕 경계 갈등: 한·중·일 삼국지, 바다 위와 다른 바다 밑의 사정
동아시아 영유권 분쟁지역에는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맞물린 자원개발의 경제적 실익이 꿈틀댄다. ‘갈등의 바다’ 해수면 위로는 전략적 거점의 국제수송로라는 공통점이 있고, 해수면 아래로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천연자원의 보고라는 유사점이 있다.
바다 밑으로까지 계속되는 갈등은 대륙붕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대륙붕은 영해나 EEZ처럼 ‘연안으로부터의 거리’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영토의 자연적인 연장’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동중국해에서 한·중·일 3국이 대륙붕 경계 문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은 바다 밑의 지형적인 원인에 기인한다. 대륙붕이 연안에서 완만하게 이어지다 오키나와 해구에서 갑자기 깊어지는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반도에서 자연적으로 이어진 대륙붕이 오키나와 해구까지 뻗어 있다는 입장이고 중국은 자국의 대륙붕이 이어도까지 이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동중국해의 폭이 좁은 만큼 해안에서 같은 거리의 중간선을 대륙붕의 경계로 삼아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 이전글문화일보(2012.7.18)중국 팽창에 대응하는 두 가지 길 12.07.18
- 다음글제주일보(2012.7.17)이어도 조례 떠넘기기...길 잃고 헤맨다 12.07.1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